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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리 스토리 · 살림

단정한 집에서 오는 행복

짐에 눌려 살던 제가 처음 내 공간을 가졌을 때

글 심플리홈 에디터 · 2025.02.27

20대 초반,
자취를 하기 전까지
제가 살던 집은
짐이 가득하다 못해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1. 짐에 눌려 살던 집

옷을 몇 개 더 걸면
무너질 것 같은 행거,

양말과 속옷이 쏟아져 나오던
플라스틱 수납함들,

조리도구는 가득한데
필요한 걸 찾으려면
한참 걸리던 주방,

문을 열면
신발이 같이 떨어지던 신발장까지요.

그 집에 들어가는 순간
답답하고 무기력해졌어요.
가족들은 늘 예민했고요.

다섯 식구가 살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각자 필요한 물건을 찾게 되는데
그때마다 이런 말이 오갔어요.

"아 진짜 어디 있어."
"누가 쓰고 어디다 뒀어."
"너 그거 어디 있는지 알아?"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물건이 많으면
찾는 시간도 길어지고,
찾는 시간이 길어지면
목소리도 날카로워지잖아요.

정리되지 않은 집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말,
듣지 않아도 될 불평을
매일 들으며 지낸 거죠.

지금 돌아보면
그 말들은 사람 탓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물건마다 정해진 자리가 없으니
누가 써도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평생 제 방이 있긴 했어요.

그런데 짐으로 가득해서
내 방인지 창고인지 모를 정도였어요.

그러니 사실은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예요.

방이 있는 것과, 내 공간이 있는 것은 달랐어요.

2. 처음 가진 내 공간

그러다 20대 초반에 자취를 하면서
처음으로 '내 공간'이 생겼어요.

평생 시달린 짐에
절대 얽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때 돈도 없었는데
오히려 좋았어요.

그때부터
뚜렷한 소비 습관이 생겼거든요.

자취방에는
작은 식탁 하나,
침대 하나,
조리도구 딱 하나씩,
화장대 겸 수납함 겸 트롤리 하나.

이것만 두고 살기 시작했어요.

트롤리 하나가
화장대도 되고, 수납함도 되었던 것처럼
물건 하나가 여러 역할을 하니
가짓수를 늘리지 않아도
생활이 충분히 돌아가더라고요.

그리고
어...? 싶었어요.

집에서 처음으로
쉼다운 쉼을 갖게 됐거든요.

주방에서 요리해서
집밥을 먹는 뿌듯함도 느껴 봤고요.

커피 하나 타서
식탁에 앉아
책을 펼쳐 보기도 했어요.

집에서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물건이 몇 개 없으면
쓰고 나서 돌려놓을 자리가 분명하고,
치우는 데 드는 시간도 거의 없잖아요.
그만큼 남는 시간이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 되는 거예요.

그때부터 제 삶이
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감히 생각해요.

단정한 집에서 오는 행복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어요.

많이 가진 방보다, 쉴 수 있는 방 하나.

3. 둘이 셋이 되고, 셋이 넷이 되어도

그때를 시작으로
11평 신혼집에서 둘이 셋이 되었을 때도,
13평 집에서 셋이 넷이 되었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같은 걸 느껴요.

좋은 집에서 오는 행복보다
단정한 집에서 오는 행복이
훨씬 오래가고 강하다는 걸요.

단비님들이 남겨주신 말 중에
부모님과 살던 집이 꼭 그랬는데
결혼하고 한참 지나 보니
우리 집도 그렇게 되어 있더라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저는 너무 알아요.

자라면서 본 집의 모습은
생각보다 오래 따라오잖아요.
그래서 지금 우리 집이
아이들에게 어떤 집으로 남을지
한 번씩 생각해 보게 돼요.

심플리 노트 | 작은 내 공간 하나, 이렇게 시작해요

  • 크기: 방 하나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서랍 한 칸, 선반 한 줄, 식탁 한쪽이면 충분해요.
  • 비우기: 그 자리에 있는 물건을 모두 꺼내고, 지금 쓰는 것만 다시 넣어요.
  • 하나씩: 같은 용도의 물건은 하나만 남겨요. 제 자취방 조리도구처럼요.
  • 지키기: 다른 사람 물건이 올라오면 그날 바로 주인에게 돌려보내요.
  • 누리기: 그 자리에서 커피 한 잔, 책 몇 장. 비운 자리를 쓰는 시간을 꼭 가져요.

넓은 집보다, 단정한 한 칸이 먼저예요.

분주했던 아침,
급한 업무를 닥치는 대로 하고
주방을 치우고
커피 한 잔 타서
테이블에 딱 앉는 순간
오늘의 글을 줄줄이 쓰게 됐어요.

이 글을 읽는 단비님과
전하고 싶은,
같이 누리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나 봐요.

집에만 오면 이유 없이 답답했던 분들,
매일 물건 찾느라 목소리가 커지던 분들,
내 공간을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분들.

작은 공간 하나부터
단정하게 시작해 보셨으면 좋겠어요.